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문단 편집) ==== 요시츠네=[[칭기즈 칸]]? ==== >나가야마 야스오는 <유사 역사학 모험 세계>에서 "칭기즈칸=요시츠네"설을 논평하고 황당무계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며 중앙 학계에서 역사라고 칭하는 자들이 반박한 일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나가야마는 몽골 왕실 및 청나라는 칭기즈 칸의 후손인 동시에 겐지의 후예라는 내용이 정치적 전략으로 [[만주사변|대륙 침공]]에 쓰이며 '''과거의 역사에 이상한 환상을 주입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불쏘시개에 머물지 않고 일본이 아시아 대륙이 혼란에 빠지는 미래를 예측하고 [[중일전쟁|전]][[태평양전쟁|란]]에 찬양을 내건 극히 정치적인 책들이 있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출처:[[https://web.archive.org/web/20210205154308/https://ja.wikipedia.org/wiki/%E7%BE%A9%E7%B5%8C%3D%E3%82%B8%E3%83%B3%E3%82%AE%E3%82%B9%E3%82%AB%E3%83%B3%E8%AA%AC|#]] 요시츠네가 [[몽골]]로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설이 수 백 년씩이나 일본 내에서 유행했었다. [[쿠빌라이 칸]]이 일본을 침공한 이유도 할아버지인 요시츠네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라는 논리를 펴고있다. '''결론적으로 근거없는 허위주장에 불과하다'''. 일단 칭기즈 칸은 요시츠네보다 연하인 1162년생(추정)이다. 게다가 칭기즈 칸의 생모나 [[수부타이]]가 포함된 [[사준사구]] 등 칭기즈 칸과 젊었을 때부터 같이 살아온 사람들도 꽤 된다는 것과 칭기즈 칸의 3남인 [[오고타이]]가 요시츠네가 죽기 3년 전인 [[1186년]]생이라는 점 역시 요시츠네 = 칭기즈 칸 설이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 안에서의 극소수만 주장하고 몽골은 물론이요 세계 어디서도 무시하는 설이며, 현대 일본인들도 보통은 믿지 않다만 자주 언급되는 속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재운]]의 소설에서 김사미의 난의 김사영이 제베가 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케이스일 듯 하다. 다만 본인도 껄끄러웠는지 최신 청소년판에서는 해당 부분이 삭제되었다.] 이런 괴상한 설은 [[에도 시대]] 사와다 겐나이라는 [[위서]] 전문 저술가가 집필한 <금사별본>(金史別本)이 발단이 되었다. 여기서는 요시츠네가 [[여진족]]이 되었다는[* [[청나라]] 초기의 유서(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에 포함된 문헌 가운데 도서집감이라는 제목의 서적이 있고 청의 황제가 그 책에 몸소 붙인 서문에서 "짐의 일족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원의경]]의 후예이다. 원의경은 [[세이와 덴노|청화]]에서 나왔으므로 국호를 청국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에도 시대에 정말 나돌았다. 《[[고금도서집성]]》은 [[정조]]가 청나라에서 편찬한 [[사고전서]]를 입수하는데 실패하고 [[꿩 대신 닭]]으로 구해다 [[규장각]]에다 귀하게 소장하게 했고, [[일본]]에서도 막부 도서관인 모미지야마 문고에 비장된 한 부 밖에 없었던 데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민간에 열람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내용을 확인할 길도 없었는데, '''일단 결론은 낭설이다'''.][* 에도 시대 교토의 승려 다이텐 겐조(大典顯常)의 《평우록》(萍遇錄)에 실려있는 [[조선 통신사]] 서장관 남옥(南玉)과의 문답에서도 다이텐이 그의 세숙인 기무라 겐카도로부터 들었다며 "《고금도서집성》에도 청 황실의 선조가 원의경, 즉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라고 청나라 황제가 인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던데요?" 라고 말을 꺼냈다가 남옥이 “청 황실의 혈통은 [[건주여진]]의 [[누르하치]]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후손이 아닌데 뭔 소리냐?”고 대답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당장 청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정묘호란|두]] [[병자호란|번]]이나 싸워 본데다 청나라 건국 이전부터 여진족들에 대한 정보를 거의 편집증 수준으로 수집해 《[[조선왕조실록]]》 등에 세세히 적어놨던 조선인들에게는 ‘청나라 황제의 시조가 사실은 일본인’이라는 주장은 굳이 《고금도서집성》까지 찾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헛소리였다.] 얘기밖에 없었는데, 어떤 경위를 거친 것인지 요시츠네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소문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썰에 지나지 않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학자인 시볼트가 저술한 일본학 저서에서 이 얘기를 다루고, 그걸 영국 유학 도중에 읽은 일본인 학자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논문으로 쓰게 되고, 이게 일본에 역수입되어 출판되면서 갑자기 일본 국내에 크게 퍼지게 된다. 일본에서는 그냥 소문에 지나지 않던 썰이 외국을 거치면서 권위가 부여되어 정식 학설로 둔갑해버린 것. 이유로는 요시츠네가 죽고 나서 7년간이 [[원조비사]]에서 칭기즈 칸의 행적이 묘연한 7년과[* 테무진이 십삼익 전투에서 [[자무카]]에게 패하고 자무카가 테무진에게 가세한 치노스 씨족 수장들을 처형한 뒤, 금나라에서 내린 관직을 받은 테무진이 타타르족과 싸울 때까지 [[원조비사]]에도 기록이 없는 공백이 있다.][* 이때 테무진은 자신의 병사들을 전부 일시적으로 해산을 시켜 뿔뿔히 흩어뜨리고 자신도 어딘가에 잠적했다고 한다. 그리고 7년 후 테무진과 몽골족들은 7년 전보다 세력을 불리고 다시 집결해서 쟈무카를 물리쳤다고 한다.] 같다는 것과 그외 억지로 범벅되어 있는데, 똑같이 흰색 깃발을 썼다거나 원(元)이라는 국명이 미나모토(源)의 원과 같은 발음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딱 [[유사역사학]] 수준의 주장이다. 정식 학문으로 연구되었던 만큼 어떤 의미로는 유사역사학보다 더욱 괴악하다.[* 자세한 것은 이 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오야베 젠이치로의 <칭기즈 칸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다.>를 참고.] 일본의 역사학자 히구치 키요유키는 "칭기즈 칸은 거구였지만 요시츠네는 체구가 작았다. 고로 둘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칭기즈 칸이 죽었을 때 몸이 줄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앤트맨]]이냐-- 위엄을 위해 작은 체구를 옷 등으로 부풀린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물론 일본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개드립 취급한다. 이외에도 제국주의 시절 일본과 교류했던 외국인들인 그리피스[* 일제 강점기 때 퍼진 [[고려장]] 설화의 최초 출처를 만든 사람이다.]나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도 이 설을 언급했던 것 보면 굉장히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https://ja.wikipedia.org/wiki/%E7%BE%A9%E7%B5%8C%3D%E3%82%B8%E3%83%B3%E3%82%AE%E3%82%B9%E3%82%AB%E3%83%B3%E8%AA%AC#%E3%82%A4%E3%82%B6%E3%83%99%E3%83%A9%E3%83%BB%E3%83%90%E3%83%BC%E3%83%89|#]] [[다나카 요시키]]의 [[창룡전]]에서 이런 개드립치며 책으로 써달라는 자에게 조상 족보가 당당하게 남은 몽골 사람을 일본인이라는 헛소리 그만하라는 투로 류도 하지메가 깐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참 많은데, [[야마구치 모모에]]가 자기는 [[양귀비]]의 후손이라고[* 마외역에서 병사들에게 몰려 목 매어 자결한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죽은 척 위장하고 빠져나와 바다 건너 일본으로 도망쳐서 살았다는 것.] 주장을 했고, 자기와 가까운 족보에 있는 야마구치 가문이 실제로 중국에 가서 조사를 했는데, 두계 양씨라는 것만은 알고 양귀비라는 이야기는 확인 못했다고 한다. 또 [[조소카베]] 가문의 조상이 실은 [[시황제]]였다는[* 쵸소카베 가문은 [[신찬성씨록]]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궁월군]]을 시조로 하는 [[하타]] 씨에서 갈라져 나왔고, 이 궁월군을 신찬성씨록에서 진시황제의 3세손 효무왕의 후손이라고 적었다.]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일본으로 건너와 머물렀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 《[[미스터 초밥왕]]》으로 유명한 [[데라사와 다이스케]]는 자신의 저서《[[절대미각 식탐정]]》에서 일종의 양불고기인 [[징기스칸(요리)|징기스칸]]을 설명하는 화에 이 이야기를 하고 "일본인들은 과대망상 기질이 있다"라며 깠다. 《[[수라의 문]]》과《[[수라의 각]]》으로 유명한 [[카와하라 마사토시]]는 일본 격투 만화 특유의 일본 제일주의가 진득한 만화를 그리면서도《수라의 각 - 요시츠네 편 후기》에서 이 설을 말하면서 "사카모토 료마가 외국인이다"라고 말하는것 만큼 실례되는 말이라며, 몽골인들에게 실례되는 설이라고 단언한다. 라이트 노벨《[[비탄의 아리아]]》에서는 이 설이 전격 채용되어 히로인 중 하나인 [[레키(비탄의 아리아)|레키]]가 이 인물의 후손이자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하지만, 작품 내에서도 주인공인 [[토오야마 킨지]]가 "그건 헛소리잖아?" 라는 투로 얘기하는걸 보면 작가 본인도 단순히 흥미를 위해 집어넣은 것일 뿐인 듯하다. 이 설정이 등장한 것도 초반에 "레키는 외국인인데 왜 외모는 일본인 같은 거지" 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그 이후론 등장하지도 않았던 데다, 정작 '''일러스트의 레키는 전혀 [[일본인]]스럽지 않다.'''[* 애시당초 이 소설의 몇몇 등장인물들은 역사상 유명 인물의 후손이거나 클론이라는 설정이 있다. 당장 주인공인 킨지는 [[토야마의 킨상]]이라는 일본 역사상 유명 인물의 후손이라는 설정이다. 히로인 아리아는 셜록 홈즈의 후손이고.] 《[[차나왕 요시츠네]]》에서 시작부분에 고문서를 연구하던 한 연구원이 "혹시 요시츠네가 몽골로 건너가서 [[칭기즈 칸]] 이 됬다는 건가요?" 라고 묻지만 바로 교수에게 헛소리 하지 말라고 무시당한다.[* 역사전공의 교수가 요시츠네에 대한 숨겨진 비록을 발굴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이에 조수가 위와 같이 물었다가 교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참고로 이 비록의 내용이 진짜 요시츠네가 자신의 [[카게무샤]]인 가짜 요시츠네에게 남기는 유언이라는 설정이다.] [[유희왕 GX]]에서 [[카부키드]]의 덱이 해당 속설을 차용했다. 만화《[[앙골모아 ~원구전투기~]]》에서도 복선을 던졌다. 《베르세르크(만화)|베르세르크》로 유명한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왕랑》에서도 해당 속설이 등장한다. 만화《칸 ~풀과 철과 양~》에서도 등장한다. 만화《[[펜리르(만화)|펜리르]]》에서도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